제가 인사를 드리기 전에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한국인일까요? 외국인일까요? 그럼 어느나라에서 왔을까요? 뻔한 질문이었나요? 네. 저는 몽골에서 온 온드라입니다. 제가 한국에 온지 어느덧 10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좋은 일, 나쁜 일...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7살에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그 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 기억이 나는 것은 외로웠다는 것이고, 그나마 동생이 있어서 위안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한국말을 모르는 저와 동생이 밖에 나가면 무슨 일을 당하게 될까봐 걱정되어서 집에 가둬 두셨습니다. 그래서 밖에는 거의 나와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당시에 집의 방범창이 달린 작은 창문을 통해 본 바깥 세상은 청개구리가 뛰어 놀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시골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일자리를 따라 이사한 두 번째 집은 공장 옆에 달린 집으로, 부모님은 매일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기 때문에 동생과 저는 집에서 늦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부모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온 지 2년이 되던 해에 저희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서울에 온 후에도 제 교육문제와 부모님 일자리 문제로 자주 이사를 해서 항상 불안정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 근처에 집을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2년 만에, 학교에 갈 나이가 좀 지나서 생활의 안정을 찾고서야 엄마는 저를 학교에 데려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처음에 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삐뚤삐뚤 제 이름 석자 밖에 못 쓰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고 노력하시는 엄마의 정성에 감동하셨는지 교장 선생님은 입학을 위해 있어야 하는 서류가 없었던 저를 받아주셨습니다. 학교에 입학하고 모든 것이 낮설고 어려웠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반에서 외국인이 한 명이니까, 또 제 생각에는 선생님께서는 막연히 제가 그래도 한국말을 좀 하겠지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를 배려하지 않고 수업 진도를 나갔습니다. 단지, 한국말만 못하는 것 뿐인데, 바보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습니다. 교과서도 곧잘 읽는 다른 친구들과 인사만 겨우 할 줄 아는 제가 비교되어 열등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저희 초등학교에는 저와 같은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수업이 없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는 ‘나, 어머니, 놀이터’ 등 아주 쉬운 단어들 밖에 없었지만 그 쉬운 단어조차도 그 당시 저에게 외계어로 쓰여진 것처럼 어려웠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이해하지 못해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반 친구의 어머니께서 저를 집으로 데려가 한국어를 가르쳐 주셔서 조금씩 읽고 쓰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학교에 다니기 전까지 저는 항상 집에서 몽골 음식만 먹었습니다. 학교 급식을 통해 한국 음식을 먹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힘들었고 말을 배우는 것만큼 빨리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짜고 매운 ‘빨간색 배추’가 제일 먹기 힘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편식을 한다며 계속 먹으라고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아직도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지만 지금은 김치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김치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5학년 때 제일 친했던 친구인 민지랑 싸웠습니다. 초등학생들에게 유명한 채팅 프로그램인 버디버디라는 메신저를 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아이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 아이는 민지의 같은 반 친구인 김모 양이었습니다. 김모 양은 민지와 합세해 대뜸 화를 내며 따졌습니다. 저도 약간의 잘못이 있긴 하였지만, 그것이 친구들에게서 욕을 들어야 할 정도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외국인이면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그러니?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따지는 것이 저에게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다른 아이와 편을 먹고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저에 대한 벽이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련회 같은 것을 가서 롤링 페이퍼를 쓴 적이 있는데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아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 아이가 ‘몽골인이라고 해서 싫었는데 막상 말해보니까 괜찮은 것 같다’라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남자아이들은 ‘몽골로 돌아가지 그래?’라는 식의 글을 썼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쓴 친구에게 왜 그렇게 말했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따지고도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이 제가 저를 몽골인이라고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따지면 제 친구들이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저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들에도 담담합니다.

   지금 저의 고민은 몽골어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한국에 살아서 한국인 정도로 한국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몽골어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인 7살의 몽골어 수준에서 머물러 있습니다. 사실 2년 전까지만 해도 몽골의 알파벳인 차간털거도 몰랐습니다. 다른 몽골 친구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초등학생들 중에는 몽골어를 못하는 아이들이 많고, 중학생 중에는 말은 하는데 잘 읽고 쓰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부모님이 몽골사람이니까 집에서 열심히 배우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희는 바쁜 부모님께 배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잘 있지도 않은 학원을 다닐 형편도 아닙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몽골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몽골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 너머의 느낌을 다시 느끼게 되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저는 이미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어려움을 견뎌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어딘가에서는 한국어를 잘 못해서 학교 수업에 따라가지 못하고 성적이 오르지 않아 좌절하는 이주아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 몽골로 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하지만 모국어를 하지 못해 걱정하고 있는 이주아동이 한국에 있습니다. 제가 최근 몇 년동안 한국에서 많이 들은 말은 글로벌 어쩌구, 국제적 어쩌구 라는 말입니다. 제가 이 글을 준비하면서 그 “글로벌, 국제적”이라는 말이 왜 우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일까/우리는 빗겨가는 것일까 하고 고민에 고민을 계속 해 보았습니다. 고민을 해 보아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주아동을 대표해서 나온 만큼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제가, 그리고 한국에 있는 제 동생들도 세계를 짊어질 미래의 꿈나무들입니다. 저희가 비록 어떤 신분으로 한국에 있던 앞으로 모국을 위해, 그리고 한국을 위해, 그리고 세계를 위해 맡은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도록 한국어, 모국어 지원 등의 다양한 교육 기회를 주시고, 한국, 몽골이 아닌 저 개인, 온드라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미래도 한국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듯이 똑같이 생각해 주십시오. 저희도 미래 한국의 자산입니다~!!!

   여기서 잠깐 제 자랑을 하면, 저는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한 지구촌 시대에 어울리는 한국과 몽골, 두 나라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저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인정받고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싶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도 지식으로 풍요로워지고 싶습니다. 끝으로 저는, 그리고 저희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고 다름을 인정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