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이주자의 합법화와 관련된 단상들
박경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NGO대학원
1. '인간'의 권리와 '국민'의 권리
이주노동자는 ‘국민’과 모든 면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헌법 제6조 제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한국이 비준․공포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에 외국인의 지위를 규정하고 있을 경우 이는 국내법과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본권 보장을 정한 헌법 규정 등이 외국인에게도 적용될 것인가에 관해서는 헌법에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 외국인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직접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본권 보장에 관한 각 헌법 규정의 해석을 통하여 외국인에게도 보장되는 기본권을 도출해낼 수는 있다.
외국인에게 언제나 내국인과 동일하게 기본권이 보장될 수는 없지만, 외국인도 일정한 범위의 기본권에 대하여는 그 보장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국민의 권리’에 속하는 기본권은 외국인에게 당연히 보장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간의 권리’에 속하는 기본권은 외국인에게도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자유권적 기본권, 청구권적 기본권, 평등권은 ‘인간의 권리’에 속하는 것이므로 대체로 외국인에게도 보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참정권, 재산권, 그리고 사회권 중의 일부는 외국인에게 선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헌법에 나타난 사회권은 제31조 교육의 권리와 의무, 제32조 노동의 권리와 의무, 제33조 노동3권, 제34조 생존권적 기본권, 제35조 환경권과 주거정책, 제36조4항 건강권 등을 들 수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조항들이 외국인, 좀 더 구체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보장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은 제7조에 균등대우의 원칙을, 제25조에서 근로조건에서의 평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ILO조약 제97호(이주노동자 조약) 제6조 1항도 균등 대우 원칙과 노동법상의 보호, 노동3권의 부여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ILO조약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조약) 제2조는 차별 없는 결사권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원칙들이 지켜지고 있는가 여부는 별개의 문제며,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는 더욱 문제가 된다.
2.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국제규약들
한국이 이주노동자의 지위나 권리와 관련해서 비준한 국제법규는 매우 다양하다. 우선 한국은 국제연합이 1966년에 채택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사회권규약)을 1990년에 비준․공포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사회권규약은 국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1950년에 ‘대량학살범죄의 처벌과 방지를 위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1951년 발효)을 비준하였고, 1978년에 국제연합의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 1969년 발효), 1984년에 ‘모든 형태의 여성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1981년 발효)을 비준하였다. 또한 한국은 1991년에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1990년 발효), 1992년에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1951년 발효), 1995년에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 1987년 발효)을 비준하였다. 또한 한국은 1998년에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ILO)의 ‘제111호 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Discrimination in respect of Employment and Occupation, 1958년 발효)을, 2001년에 ‘제19호 노동자의 재해보상에 대한 내․외국인 노동자의 동등한 대우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Equality of Treatment for National and Foreign Workers as regards Workmen's Compensation for Accidents, 1925년 발효)을 각각 비준하였다.
한편 한국이 가입한 국제기구에 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준수하여야 할 지침이 되는 문서들도 있다. 1948년 제3차 UN 총회에서 채택한 ‘세계인권선언’과, 1985년 제40차 UN 총회에서 채택한 ‘체류국의 국민이 아닌 개인의 인권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Human Rights of Individuals Who are not Nationals of the Country in which They Live; 외국인 인권선언) 및 1919년에 설립된 ILO의 ‘국제노동기구헌장’(ILO Constitution)과 1944년 5월 10일 제26차 ILO 총회에서 채택된 ‘ILO의 목표와 목적에 관한 선언’(ILO Declaration Concerning Aims and Purposes; 필라델피아 선언 Declaration of Philadelphia) 등이 그것이다. 물론 선언이나 헌장이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에 포함되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회원국들이 달성해야 하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국회가 비준하지 않았으나 발효된 국제법규들도 있다. 1990년 제69차 UN 총회에서 채택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the Rights of All Migrant Workers and Members of Their Families, 1990; 2003년 4월 1일 발효), ILO의 ‘제97호 취업을 위한 이주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Migration for Employment, 1949; 1952년 1월 22일 발효)과 ‘제143호 불법이주 및 이주노동자의 기회와 처우의 균등 촉진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Migrations in Abusive Conditions and the Promotion of Equality of Opportunity and Treatment of Migrant Workers, 1975; 1978년 12월 9일 발효) 등은 국회가 비준하지 않았으므로 법률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규범이므로 중요하게 참조할 수 있는 기준으로 간주된다.
3. 노동3권을 통해본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상황
노동자는 노동3권을 갖는다. 이주노동자도 내국인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사용자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보수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므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3권이 헌법상의 기본권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에는 외국인이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근거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제6조 제2항에서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는 규정이 있으므로 이주노동자가 노동3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는 국제법 및 조약과 노동3권의 성격에 대한 해석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이 비준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조에서 “권리들이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견, 민족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지위 등에 의한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보장․확보될 것”임을 정하고 있고, 제8조에서는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국제연합의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에서도 제5조에서 노동조합결성 및 가입에 있어 인종적 차별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ILO권고 제151호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원 자격 및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과거 산업연수제도 아래에서는 노동자가 아니라 연수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노동3권을 누릴 수 없었지만,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이제 합법적으로 취업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노동3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주노동자들이 현실적으로 노동3권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매년 사용주와 계약갱신을 해야 하는, 즉 사용주의 마음에 들어야만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이주노동자들이 속해있는 사업장이 대부분 규모가 작고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노동3권은 사치스러운 표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미등록노동자의 경우다. 미등록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될 수 있는가에 관련하여 대법원은 이미 1995년에 ‘노동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출입국관리법에 위반하여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이 취업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법의 목적은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의 고용이라는 사실적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자 하는 것이지, 이미 취업한 외국인이 제공한 근로에 따른 권리나 이미 형성된 근로관계에 있어서의 근로자로서의 노동관계법령상의 제반 권리까지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판결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판결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이런 내용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는 2005년에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주노조)가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이를 반려했다. 이유는 이주노조가 조합원 소속 사업장 명칭, 조합원 수와 대표자 성명, 외국인 등록번호 등 취업 자격 확인 자료 등을 보완제출하지 않았고, 임원 3명 중 2명이 현행법상 취업 및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공무원의 통보의무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미등록노동자들이 자신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스스로 노출할 수는 없다. 그런 점은 고려되지 않았고, 오히려 강력하고도 집요한 표적단속이 지속되었다.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결성을 추진하던 때인 2002년부터 시작된 표적단속은 이주노조를 결성한 이후에도 지속되어서 위원장을 포함하는 핵심간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강제추방 당했다. 특히 2008년 5월에 청주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던 토르나 이주노조 위원장과 소부르 부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구제 조치 권고'를 무시한 채 이뤄진 것이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이주노조로부터 '이주노동자 표적단속 및 단속과정에서의 폭행 등에 대한 진정'을 접수받고 이를 조사 중이어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에게 "진정인과 피진정인 진술, 관련 증거 확보 등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이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강제퇴거 명령서의 집행을 유예해 달라"는 긴급구제 조치를 권고했었다.
정부가 미등록노동자들을 곱게 봐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특히 이주노조와 관련해서는 철두철미하게 ‘와해’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평범한 한국 사람들은 언론에 비치는 가난하고 불쌍한 존재로서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만,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로서 인정은 하지 못하겠다는 시각으로 보는 느낌을 갖는다. 미등록에 대해서는 좀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는 안 됐지만 법을 어겼으니 추방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보는 듯하다.
4. 이주노동자 바라보기
UN의 사회권 규약에 따르면 각 가입국은 “이 조약에서 인정한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점진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또한 국제적인 원조와 협력, 특히 경제적 기술적인 지원과 협력을 통하여, 자기 나라의 가용 자원이 허용하는 최대한도까지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진다. 즉 사회권은 각 권리 영역에 있어서 만국 공통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 가용한 자원이 허용하는 최대한도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이 규약이 현실적인 효력을 발생하려면 ‘가용한 자원’의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한 나라의 자원이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분배와 우선순위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경제사정의 변화와 함께 우선순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매우 많으며, 최근의 경제위기와 맞물려서 더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최근의 경제위기를 맞아서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정도의 차이가 약간 있을지는 몰라도 기존에 있었던 문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온 지난 20여 년 동안에 안고 왔던 문제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지구상에 단순기능직 노동자의 도입을 조건 없이 허용하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내국인 우선고용의 원칙’에 따라서 그 나라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용한 후에도 채울 수 없는 일자리에 한해서 외국인에게 개방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한국인 노동자들로 채우려는 노력을 했지만 올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비어있는 공간에 외국 인력을 도입해왔다. 이제는 그 공간들 중의 상당수가 외국 인력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해왔다. 실제로 IMF외환위기 때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내보내고 한국인을 고용하는 회사에 지원금을 준다고 (즉 한국인 직원의 월급을 정부가 대신 내준다고) 했지만 막상 외국인을 내보낸 자리에 일하겠다고 들어오는 한국인은 없었다. 이쯤 되면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존재가 이미 되었음을,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임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이미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형편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일부가 된 사람들 중의 상당수가 미등록노동자라는 점이다. ‘불법체류’라는 딱지를 안은 사람을 그냥 그대로 놓아두며 모르는 척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등록노동자의 수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인권침해의 시비가 없는 방법은 사업주들을 압박해서 그 사람들을 고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사업주들은 처벌이 두려워서 한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게 될 것이고,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자연스럽게 귀국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공장에 외국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정부는 사업주 단속 부분은 사실상 포기하고 가두단속에만 주력하는 양상이다. 공장입구를 막고 일하는 사람들을 잡아가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을 거리에서 연행해 가는 방식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인권 침해의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본 결과, 정부의 이런 단속 방식은 이주노동자에게 공포심을 불어넣는 데에는 성공을 거두었는지 몰라도 자진출국으로 이어지지 않고 잠적과 농성, 그리고 자살 사태로 이어졌다.
과연 장기체류자들을 전원 강제 출국시키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한 마디로 말해서 이들은 숙련공들이어서 작업 숙련도가 높고, 따라서 고용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한국말과 문화에 익숙해져서 나중에 도착한 후배들을 지도하고 훈련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이 한국에 ‘연착륙’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장기 체류자들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사업주나 한국 전체를 위해서도 유리하다. 도대체 왜 한국말 잘하고 숙련되어서 ‘부려먹기’ 편한 그들을 다 내쫓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 정책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논리가 인종주의일 것이다. 한국에 와서 잠깐 일하고 돌아가는 것은 괜찮지만 계속 사는 것은 안 된다, 한국인과 피를 섞는 것은 안 된다.
5. 다문화사회 담론과 인종주의
얼마 전인 2009년 7월 10일에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인 인도출신의 보노짓 후세인 씨에게 가해진 인종차별/모욕 사건은 한국 사회의 인종 정서가 겉으로 드러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보노짓 후세인 씨의 경우는 교수라는 신분과 조력자를 갖고 있었다는 위치 때문에 공식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겠지만, 사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이 정도의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문화주의를 찬양하는 요즘이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어떻게 보면 다문화에 대한 찬양이 커질수록 미등록자의 삶은 더 힘들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우리의 다문화는 이주노동자를 포함하고 있는가, 우리의 이주노동자를 소중이 여겨야 할 다문화의 일부로 보고 있는가.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질문들,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질문들은 한국사회의 다문화를 시험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2007년 8월 17일에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대한민국정부가 제출한 인종차별철폐 관련 보고서에 대한 심사견해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이 위원회는 대한민국이 민족적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대한민국 영토에 거주하는 타 민족적 및 국가적 집단 간의 이해, 관용, 우의를 증진하는데 저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밝혔다. 또한 이 위원회는 대한민국이 현대 대한민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식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실제 상황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단일 민족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하여 교육, 문화 및 정보 분야에서 적절한 조치를 채택하도록 권고하였다. 이 권고에는 특히 초등 및 중등학교의 교육 과정과 교과서에 국내에 거주하는 다른 민족 및 국가 집단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보, 모든 인종, 민족 및 국가 집단 간의 이해와 관용, 우의를 증진시키는 인권의식 프로그램을 포함시킬 것 등이 들어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인종차별을 끝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많다는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변화의 속도가 빠른 한국은 다문화사회로의 진입 속도도 빨랐고 다문화주의의 사회적 수용 속도도 남다르게 빨랐다. 그러나 다문화주의에 대한 현재의 높은 합의 수준은 긴 시간 동안에 걸친 사회적 조정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하기 보다는 별 관심이 없는 사이에 국가가 선포하고 끌고 나간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더욱 많은 접촉을 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가 과연 미래에도 별 탈 없이 평화로운 다문화주의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다른 나라의 예를 살펴봄으로써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문화주의를 국가의 공식이념으로 채택하고 실천해온 나라들이라고 해서 그것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며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강한 국가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다문화주의에 대해서 단호한 반대 입장을 보인다. 세계 최초로 1971년에 다문화주의를 국가의 공식이념으로 채택한 캐나다에서도, 그리고 공식적으로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상으로 다문화주의를 실천해온 미국에서도 다문화주의는 각 집단이 배타적인 정체성을 갖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통합을 방해하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1973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다문화주의를 채택한 호주에서는 인종적으로는 다수자(백인)에 속하지만 다문화주의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문화주의를 반대하고 다문화사회로 가는 흐름을 거부한다. 심지어 우리에게는 ‘똘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의 극우 정당들은 ‘프랑스인을 위한 프랑스’를 외치며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결코 동화될 수 없으므로 프랑스를 떠나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나라이건 간에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대개 주류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예를 들면 백인 하층노동자)일 가능성이 많으며, 그들은 경기가 나빠져서 해고당하면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민자 추방을 외치는 극우정당의 인종차별적인 구호에 열광하게 된다.
만약 한국 사회에 더 많은 이주민이 들어오게 되고 내국인과 본격적으로 일자리 경쟁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는 다문화주의를 당연한 가치로 여길 수 있을까? 세계화의 물결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해서 삶이 팍팍해질 때에도 나는 배고파도 좋으니 국제결혼해서 온 신부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을까? 다문화사회는 몇몇 사람의 주장으로 도래하는 것도 아니고 정부의 선언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성원들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다문화사회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렇게 만들어가야만 집단의 이름으로 편을 가르는 도전이 올 때 인간의 가치에 대한 믿음으로 다문화사회를 지켜갈 수 있다.
6. 함께 살기
‘외국인들의 체류가 장기화되면서 각종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에서 ‘각종 사회문제’란 범죄나 지역 사회에서의 갈등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인구비율로 비교해볼 때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 보다 더 많은 범죄를 일으킬까? 인구 비례로 보면 한국 땅에서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한국인이 저지를 확률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 어떻게 보면 외국인 범죄가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재해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한국 사람들이 더 큰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제대로 된 인력 정책이 없어서 이주노동자들의 생활공간이 슬럼화 되어가는 데 있고, 이들의 소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들의 내부에서(집단 내 또는 집단 간) 일어나는 갈등에 한국의 공권력이 개입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취해야할 제도 개선은 여러 가지가 있다. ①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고용허가제도의 투명성 확보를 통해서 입국브로커 근절시키고 입국비용을 더욱 낮춰야 하며, ② 사업장 변경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개선해서 합법적으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 상태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③ 그렇다고 해서 내국인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면서까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는 없다. 두 집단이 충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의 원칙 하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해야 한다. ‘싼 맛’에 이주노동자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내국인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윈-윈 게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④ 장기체류를 하고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해서 영주 노동권을 부여할 것인가에 관해서 공개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주노동자와 관련해서 긍정적인 가능성과 부정적인 가능성이 동시에 있다. 긍정적인 가능성은 한국 사회가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관심과 허용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과 지원단체들이 이주노동자들의 귀환 이후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인권단체들의 활동과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에 힘입어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 지원단체들이 송출국의 시민단체와 연계하려는 움직임 등은 이주노동자운동이 힘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다. 반면에 이주노동자의 수가 늘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제위기와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 분위기에 편승해서 외국인혐오증을 퍼뜨리려는 움직임 또한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은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내국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사이에는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이주노동자운동은 내국인에 의한 도와주기 차원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이 그동안 보여준 건강성과 역동성으로 이주노동자문제를 이끌어 갈지, 아니면 점차 체제 내에 흡수되어 보수화의 길을 걸으면서 이 문제를 주변적인 것으로 방치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출산률의 저하와 인구구성의 변화로 미뤄볼 때 수많은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보인다. 한국의 사회운동진영이 이주노동과 관련된 긍정적인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부정적인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해내야만 비로소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의 최하층으로 주변화하고 그들의 거주지가 게토화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인간 이성의 끊임없는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인종주의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 교묘하고도 새로운 형태의 신인종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문제는 더욱 거세지는 세계화의 물결로 국경을 넘는 이민이 갈수록 늘어가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인종주의가 콜럼부스 이래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결과로 나타났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최근 들어 더욱 늘어가고 있는 세계화와 이민의 물결은 더 많은 갈등, 더 심한 인종주의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인종주의적 태도를 갖는 사람들이 주로 교육수준이 낮은 저소득 하층 노동계층 또는 실업자들, 즉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인종주의의 미래는 한국 사회가 소외된 사람들을 줄여갈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