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인생'

몇 달 전 퇴직금 체불 관련 상담을 했던 베트남에서 온 00씨.
몇 번의 전화통화에서 사업주는 퇴직금 미지급이 사실이고 어느정도 지불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 후 전화를 피하는 등 연락이 되지 않아 노동부에 퇴직금 체불 진정을 했었다.

진정 후 한참이 지나도 여전히 사업주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노동부 담당자에 의하면 사업주에게 출석요구를 몇 번 했는데 계속 날짜를 미룬다고 했다. 그렇게 사업주가 시간을 끄는 동안 00씨의 생후 1년도 안된 아이는 언청이 수술을 받았다.

그러던 며칠 전 사업주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 조그만 일로 무슨 진정까지 했냐며 만나서 해결하잖다. 00씨가 아이의 수술비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사업주는 조그만 일이라고 했다. 몇 달 만에 전화해서는 그동안 마음조린 00씨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종일관 여유를 보였다. 그러고는 내가 데리고 있던 아이(사업주는 40대 후반에서 50초반, 00씨는 40대 중반이다.) 나도 잘 챙겨주고 싶다며 성의 표시는 할 테니 우선 만나자고 했다. 퇴직금 지급이 아니라 성의 표시라고 했다.

사업주가 약간의 성의표시로 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며 00씨에게 의견을 물었다. 수술비 때문에 마음이 급한 00씨는 빨리 받고 싶다며 만나자고 했다.

사업주, 00씨, 필자가 카페에서 만났다. 사업주는 한참을 어린 필자에게 저희(사업주와 00씨) 때문에 고생 하신다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바로 00씨에게 고개를 돌려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는 00씨의 머리위에다 "야 임마! 너는 나 어려운거 뻔히 알면서, 내가 너 데리고 있을 때 우리 사이도 좋았잖아."라고 했다. 사업주의 이중적인 태도에 의아해하는 필자와 달리 00씨는 고개를 숙이고 잘못한 듯 앉아있었다. 계속되는 사업주의 일장연설. 사업주는 마치 00씨가 본인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처럼 삶에 대한 온갖 충고를 늘어났다. 00씨에겐 무례하고 업신여기는 태도를 잊지 않았고, 필자에겐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참 좋은 일 하시네요."란 말을 잊지 않았다. 약 한 시간의 만남에서 사업주는 00씨를 이 자식, 임마, 야, 쟤, 얘 라고 표현했다. 00씨는 사업주의 일방적인 훈계를 듣고서야 겨우 퇴직금의 1/3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고개 숙여 받았고 합의서에 사인을 했다.

미안함까지는 아니어도 약간 민망해하지는 않을까 했던 필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금사정이 나빠서 라던가 5인 미만 사업장이 라던가 등의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지만 이런 저런 핑계라도 대는 사업주는 오히려 양심적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노동자의 노동을 대가 없이 사용해 놓고 적선하듯 합의금을 제시하는 사업주의 뻔뻔함이라니.

사업주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필자는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과하게 예의바른 대접을 받았다. 물론 00씨는 외국인노동자란 이유만으로 최소한의 인권도 무시됐다. 이는 개인의 인품의 반영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한 인종차별주의와 민족주의의 반영인가.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존중을 받은 필자는 요즘 인기좋은 모 방송국 개그프로그램에 나오는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