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산재 쉼터는 산업재해, 질병, 해고 등의 이유로 머물 곳이 없는 이주민들이 함께 생활 하는 공간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병원을 다니기도 하고, 회사를 구하로 구직활동을 하기도 하며, 낯선 땅에서 입은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를 함께 모여 치료받기도 한다.

 

쉼터를 담당하고 있지만, 평소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선생님이 계시는 관계로 일주일에 1~2회 정도 가보기만 할뿐 이들 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였다. 나의 무관심이기도 하였으며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에 귀찮음을 동반하여 자주 가지 않았고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에게 그들만큼의 따뜻한 미소로 응답해주지 못하였다.

 

쉼터에서 함께 생활하던 선생님이 고향으로 휴가를 떠나 잠시 쉼터 사람들과 함께 장을 보기도 하고, 평소보다 조금 더 자주 쉼터를 찾아가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따뜻하게 맞아주는 그들은 밥은 먹었는지? 자기들은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하나하나 이야기를 해주며 나를 맞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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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의 과거의 삶이나 현재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났다.

 

쉼터에 있는 방글라데시 야문 씨(가명)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하여 근로 활동 중 허리디스크로 인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쉼터에 머물며 치료를 하고 있다. 좋은 사장님을 만난 관계로 치료하는 동안 사업주가 이탈신고를 하지도 않고 치료에 전념하게 할 수 있어, 마음이 조금은 편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 고향에서 아프리카와 인도의 역사를 전공하여 대학까지 졸업한 마문 씨는 영어, 인도어, 한국어, 벵골어 능통하여 쉼터에 오는 네팔사람에게는 인도어로 나에게는 한국어로, 이태원의 마트에서는 벵골어 말하는 능력자이다. 언제나 밝은 웃음을 가지고 있는 야문씨는 현재 쉼터에 리더로써 생활하고 있다. 무거운 짐을 들 때나 먹거리를 살 때 항상 먼저 나서서 연락하고 찾아오는 그는 인도와 아프리카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너무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야기를 해주어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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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온 바카씨(가명)는 처음 본 순간,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가슴 한편에서 뜨거운 눈물이 나와 이야기를 하다 몇 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꽤 오래전 한국에 입국한 바카씨는 출입국사무소에 단속되어 화성보호소에 보호되었으나, 몸에 큰 이상을 느껴 병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몸이 점점 붓고, 혈뇨와 피곤을 크게 느낀 바카씨는 검사를 받게 되었고, 신부전증에 걸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망률이 암보다도 높으며 마땅한 치료방법조차 없는 신부전증은 바카씨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키게 되었다. 5년째 지속되는 치료, 신장이식을 위한 기나긴 대기시간, 일을 할 수 없다는 고통, 언제 건강이 안 좋아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바카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 슬픔에 몸에 느껴져 눈물이 날까봐 자꾸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되고,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터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바로 연락을 주고 문자를 보내는 그를 보면서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에 장을 함께 보러 가는 길에도 늦은 시간이라 마음이 급해 가게 문이 닫기 전에 가기위해 빨리 걸어가는 제 뒤에서 빨리 올 수 없어 천천히 오는 바카씨를 보며, 조금의 배려도 하지 못한 저 자신을 뒤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몽골에서 온 어씨(가명)는 청주에 있는 한 공장에서 프레스에 손이 눌려 산업재해를 당하였으나 병원입원 중 사업주에 의해 강제로 쫓겨난 이주노동자입니다. 우리 같은 센터에 연락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괘심하다, 사업장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그는 갈 곳이 없는 상황에 센터에 연락을 하였고, 쉼터에 머물며 치료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 그가 찾아 왔을 때 한국말도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치료에 급한 마음에 날마다 전화하는 것에 마음에 압박을 심하게 받았다. 찾아온 날 처음 전원 신청도 하였고, 통역이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 주었지만 전원 신청하고 처리되는 기간 동안 마음이 급한 그는 센터에 찾아오고 전화도 하여 짧은 한국말로 무슨 이야기를 하였지만, 지역에서 지역으로 옮기는 업무처리 기간 동안 그에게 더 이상의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금은 매일같이 나가 치료를 받고 있는 어씨는 빨리 회복되어 일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나이로 38살이 된 그는 고국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휴업급여까지도 송금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 않아 치료만 잘한다면 다시 일할 수 있는 그가 쉼터에서 나가 빨리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